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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한국에서 몇 가지 소식이 도착했다.
내가 미궁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수아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서 보내준 것이다.
딱히 큰일은 없는 듯하다.
예정했던 대로 사라진 대형 길드들의 빈자리를 송재하의 화랑이 야금야금 차지하며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고, 정수아는 이찬걸 등과 함께 고독과 키메라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현재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중국 헌터계 쪽부터 뒤져본다는 모양인데, 이찬걸이 특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미궁에 들어가 있던 사이 진행된 대선은 당연하게도 유철영의 당선으로 끝이 났다.
여러 길드가 말 그대로 박살 나는 커다란 변수가 있기는 했다만, 그런 변수마저도 유철영의 당선을 막을 수 없었다.
일찌감치 협회장 노관식과 손을 잡은 유철영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쪽이 나서지 않는 한 당연하다시피 한 일이었기에 별다른 감상은 없다.
그저 평생동안 그토록 바라왔던 자리에 올랐을 인간의 얼굴이 한번 보고 싶을 뿐이다.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해 가며 앉은 자리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당장은 성취감도 있고 여러모로 기쁘겠지만, 그 이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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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행복이 파워볼게임 나중에도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까?
유철영 본인이 아니기에 잘은 모르겠다. 엔트리파워볼
앞으로 다시 만날 생각도, 엮일 생각도 없다만, 나중에 혹여 만나게 된다면 한 번쯤 물어보고 싶기는 하다.
어쨌든 유철영이 대통령이 된 것과 동시에 노관식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일전에 말했던 엄격한 EOS파워볼 규율 아래의 강력한 통제.
헌터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던 지금까지 하고는 완전히 다른 제도.
당연히 헌터들은 반발했지만, 앞장서서 가장 크게 반발했을 대형 길드들이 대부분 해체된 까닭에 제대로 된 반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남은 5대 길드인 쌍룡은 과거부터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폐쇄적인 곳이고, 권제나는 아직 귀국은커녕 미궁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그나마 최근 세력을 크게 키운 송재하의 화랑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이쪽은 노관식과 모종의 거래가 있던 탓에 먼저 나서는 일은 없었다.
저쪽이 괜히 우리를 로투스바카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우리도 건드릴 생각은 없다.
그렇게 총대를 메줄 대형 길드들이 없자, 노관식이 추진 중인 개혁은 상당히 잘 먹혀들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전폭적으로 새로운 제도를 지지해주고 있으니, 당장에 노관식을 막을 만한 상대가 없었다.
아마 이번 일이 끝나고 국내로 귀국하면 나라 꼴이 제법 재밌게 돌아가고 있을 것 같다.
정수아가 보내준 보고서를 한차례 훑으며 짧게 혀를 찼다. 로투스홀짝
“흠. 김수한. 이번 일에 대해서 쌍룡의 생각은 어떻지?” 이쪽의 물음에 김수한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쌍룡은 이번에도 그저 침묵을 지킬 생각인 모양이다.
쌍룡 소속인 김수한은 놀랍게도 그저 평범한 헌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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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룡 내에서의 정확한 직급은 모르겠지만,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비밀 경매에 책임자로 참가하는 만큼 그리 낮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랭크에 비해 조금 과한 직급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수한이 바로 현 쌍룡의 길드장 전해룡의 외손자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그 친할아버지는 놀랍게도 쌍룡의 부길드장인 김판용이다.
그러니까 김수한은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각각 쌍룡의 길드장과 부길드장인 금수저 중의 금수저라 할 수 있다.
길드장과 부길드장, 두 개로 나뉘어 있던 쌍룡의 파벌이 훗날 김수한 아래 모두 모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싶었다만, 조금 놀랍다.
얼떨결에 쌍룡의 후계자이자 차기 길드장을 만나게 되었다만, 딱히 김수한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다.
언제나 말했지만, 당장에 지배 같은 것에 관심은 없으니까.
조금 시간이 흐른 훗날에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지금은 전혀 무언가를 할 생각이 없다.
그저 이대로 가만히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다.
뭐, 정수아에게 김수한을 맡기면 무언가 일을 꾸밀지도 모르겠으나, 거기까지는 굳이 제재할 생각이 없다.
그녀가 무언가 일을 꾸며봤자 결국, 제 일이 늘어나는 건데.
그렇게까지 일하고 싶어 한다면 그저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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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놈들의 또 다른 시설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록 키메라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이 당장에 나나 스노우 정도밖에 없었기에 직접 움직여야 했지만, 어느 정도 위치를 특정했던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특정한 장소 주변에서 얌전히 기다리다가 역한 냄새가 나는 놈을 찾아 그저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도착한 아지트는 이전에 들렸던 곳과 거의 다를 게 없었다.
지키던 키메라들의 수준도 똑같았다.
그곳에서 이전처럼 죽일 이는 죽이고, 살릴 이는 살린다.
필요한 자료를 찾고, 시설은 파괴한다.
발견한 자료에서 또다시 장소를 특정해 그곳에서 대기한다.
이러한 일을 며칠 동안 반복하니, 그동안 박살 낸 아지트의 수가 어느새 열을 훌쩍 넘겼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쪽에서도 이쪽의 존재를 드디어 눈치챈 모양인지 다른 곳보다 키메라들의 숫자나 수준이 높은 곳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별문제는 없었다.

중간부터는 스노우에게 특강을 들어 인화의 술을 마스터한 아리파도 함께였기에 오히려 더 수월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놀랍게도 옥타비아 역시 인화의 술을 문제없이 익히기는 했으나, 녀석은 설이의 놀이 친구였기에 데려오지 않았다.
그간 조금 스트레스가 쌓인 모양인지, 녀석 본인도 함께하고 싶어하는 듯 보였으나 조용히 무시했다.
참고로 생각보다 유모에 재능이 있던 모양인지 옥타비아는 설이와 아이들을 굉장히 잘 돌봤다.
아지트의 전력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중간 관리직 이상의 상급자는 여전히 없었다.
그래도 이 기세라면 그리 머지않아 이들의 상급자 역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상급자라 해봤자, 더 위에 있을 배후까지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동안 보아온 이놈들의 습성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리 생각하면 이 짓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싶기도 하다.
키메라들에게 풍겨오는 역한 내를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며칠 동안 계속 맡고 있으려니….
보통 냄새란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아무렇지 않아야 정상인데, 이 키메라놈들의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가 이런 냄새나 맡으려고 키메라 놈들을 때려잡고 있는가 하고 자괴감이 들 때도 종종 있다.
이대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터질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말 그대로 돌아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슬슬 더 참지 못하고서 다 때려치우고 다음 미궁이나 보러 갈까 고심하던 찰나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관리직 녀석들의 상급자를 만날 수 있었다.
평소처럼 냄새를 쫓아 찾아간 아지트는 평소하고는 조금 달랐다.
랭크가 낮은 조무래기 녀석들을 시작으로 S랭크 수준의 관리직급 녀석들이 한가득이었다.
관리직만 하더라도 그 수가 수십을 훌쩍 넘기는 것을 보니, 일본에 남아 있는 녀석들을 모두 불러 모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작정하고 우릴 기다린 듯하다.
키메라로 변한 상태로 말없이 우리를 노려보는 수십의 눈동자.
그 어느 때보다 역하게 올라오는 진한 냄새에 그냥 다 쳐 죽여 버릴까 고심하던 찰나, 놈들 사이로 웬 사내 하나가 걸어 나왔다.
이렇다 할 특징이라고는 전혀 없는 평범한 중년 남성.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생김새의 사내는 그 평범한 외모와 달리 느껴지는 기세가 SA랭크였다.
“요즘 계속 저희를 습격하는 분들이 바로 당신들인가요?” 사납게 우리를 노려보는 다른 키메라들과 달리 덤덤히 물어오는 사내의 목소리는 별다른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키메라 특유의 그 역한 내 역시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만히 보면 그저 평범한 한 명의 헌터로 보인다.

그 랭크가 SA란 시점에서 이미 평범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흠. 쓰레기 청소를 요 며칠 열심히 하기는 했지.” “그런가요? 음. 그렇군요.” 한차례 고개를 주억인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저희가 그쪽에 무슨 잘못을 했나요? 납치당한 이들 중에 지인이라도…?” 사내의 물음에 보고를 위해 귀국한 김수한의 존재를 잠시 떠올렸다.
분명 함께 납치된 길드원들이 있다고 했던가?
그간 여러 시설들을 습격하며 나름대로 찾아보려 애썼지만, 전혀 찾지 못했다.
아마도 저들의 장난감으로 이용되다 처리당하거나 본격적인 실험실 같은 곳으로 이동되었겠지.
딱히 그에 대해 별 감정은 없다.
찾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으니까.
“따로 납치된 지인은 없군.” “그렇다면 굳이 저희들을 이렇게 방해하실 필요가…?”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조금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 말이야.” “으음. 몇 년 전이라… 흔적이 남을 만한 일을 한 적은 없는데… 아, 설마 요시다 놈과 관련된 일인가요? 혹시 한국에서 오신 분?” 이 사내도 제법 머리가 잘 굴러가는 모양이다.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사내가 조용히 턱을 괴었다.

“흐음. 요시다가 머리는 참 좋은 놈이었는데, 자신감이 너무 지나쳤죠. 언젠가 사고를 치기 전에 처리하려고 했었습니다만… 으음,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전부 다 제 불찰입니다.” 넌더리가 난다는 듯 사내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이렇다 할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반응이 건조한지라, 이제는 그냥 헌터도 아닌 평범한 중년으로만 보인다.
그래서 더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백장미가 무심코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어떻게… 사과라도 드릴 테니 이쯤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쯤 하자고?” “예. 이런 소모적인 일만 계속하다가는 도저히 남는 게 없어서요. 그쪽도 보통 분은 아니신 거 같은데… 싸우게 되면 역시 손해가 많겠군요. 그러니 적당히 여기서 마무리하시는 게 어떤가요? 사례는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조용히 팔짱을 꼈다.
여기서 끝을 내자는 제안과 달리 간파의 마안으로 살펴본 사내에게서는 진득한 살의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틈만 보인다면 당장에라도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적의.
그럼에도 그런 것을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잠시 침묵한 채 조용히 사내를 바라보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사례라면 어떤 걸 줄 거지?” “원하시는 건 뭐든 드리겠습니다. 돈이면 돈. 여자라면 여자. 권력이라면 권력.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뛰어난 장비를 원하신다면 좋은 장비 역시 선물해 드리죠.” “권력이라… 내게 권력까지 쥐여줄 수 있을 정도로 너희가 그리 대단한가?” 이쪽의 질문에 사내가 조금 곤란하다는 듯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그 정도로는 가능하죠. 다만, 어디까지나 외부인이시니 그리 높은 곳까지는 오르시기 힘들 겁니다.” “그리 높은 곳이라면 어디지?” “흠. 한국에서 오신 분이라면… 그렇군요. 협회장이나 대통령 정도는 되겠군요.” “협회장과 대통령이라… 혹시 이 나라는 이미 너희의 손길이 뻗어 있나?” “으음. 글쎄요.” 의뭉스럽게 답하는 사내의 모습에 조용히 턱을 매만졌다.
애초부터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말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뭐, 그리 상관은 없다.

그런 거야 이쪽에서 직접 알아보면 되니까.
일본 헌터 협회의 협회장은 몰라도, 일본의 총리라면 고독에 당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총리가 아닌 적어도 고위직의 누군가는 반드시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혹시 협회장이나 대통령 자리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저희와 함께하시면 가능합니다. 당장에 그런 중요 자리를 드릴 수는 없고… 음.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을 거친 뒤라면 가능하겠군요.” “적응 기간이라… 혹시 너희들과 함께하면 나도 저런 꼴이 되어야 하는 건가?” 흘깃 주변을 둘러싼 키메라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사내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적합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당신도 저희와 같은 선택받은 ‘신(新)인류’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신인류?” “예. 신인류입니다. 구인류하고는 완전히 격이 다른 훨씬 더 뛰어난 신인류지요. 저희는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입니다.” 자랑스레 가슴을 펴고 말하는 모습에 절로 혀가 차진다.
“이것저것 섞어놓은 잡종 주제에 신인류는 무슨.”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한순간 이쪽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시종일관 웃는 낯이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날카로운 얼굴이다.
그동안 사내가 꼭꼭 숨겨놓았던 기세 역시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쪽이 진짜 얼굴인가? 아까보다 훨씬 낫군. 웃는 얼굴은 별로 안 어울렸어. 솔직히 좀 많이 역하더군.” -저기 있는 저 쓰레기들처럼 말이야.
조용히 덧붙이는 목소리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키메라들 역시 진득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몇몇 성질 급한 놈들은 걸쭉한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만─”
잡다한 욕설도, 스멀스멀 흘러넘치던 살기도 모두 말끔히 사라졌다.

나지막이 내뱉은 사내의 목소리에 키메라들이 모두 쥐 죽은 듯 얌전해졌다.
그간 보아온 녀석들의 흉포한 성정을 생각하면 조금 놀랍다.
평소에 사내가 저들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어느새 제 감정을 갈무리한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고저 없는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래서… 아무래도 저희와 함께하실 생각은 없는 겁니까?” “저런 잡종 쓰레기가 될 생각은 없으니, 너희와 함께할 생각도 없다.” “…그렇군요. 음. 그래요.” 자연스레 찌푸려진 미간을 문지르며 사내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사과는 받으실 겁니까?” 나지막이 내뱉는 사내의 모습에 어렴풋이 깨달았다.
우리에게 가진 적의하고는 별개로 그는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 이유를 다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아까 말했던 것처럼 입게 될 손해를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제 감정보다는 조직의 이득이나 손해를 더 신경 쓰는 모양이다.

“사례가 뭔지에 따라 다르겠지.” “무엇을 원하시죠?” 덤덤히 물어오는 목소리에 씨익 웃어 보였다.
“일단은 너를 포함한 여기 있는 전원의 목숨부터 받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죽고 싶은 거냐?” 존댓말마저 집어치운 채 슬며시 눈살을 찌푸리는 사내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이쪽의 모습에 와락 얼굴을 구긴 사내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더 떠들 가치도 없군. 모두 저놈을….” “기다려라. 내 요구는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일단은’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처구니가 없군. 그래 한번 들어나 보지. 우리의 목숨을 거둔 다음에는? 그 다음에 원하는 건 뭐지?” “너희 보스의 모가지. 그 정도면 충분한 사과가 될 것 같군.” “…영리한 놈인 줄 알았는데, 완전 미친놈이었군. 감히 그분을 입에 담다니.” “쥐새끼처럼 꼭꼭 숨어서 나타나지도 않는 놈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지.” “…그분을 모욕한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스산하게 읊조린 사내가 주변을 가득 메운 수하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죽여라.”
덤덤히 내뱉는 것과 동시에 키메라들이 덤벼든다.
각양각색. 제각각 다른 생김새를 가진 키메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지. 여기 다른 이들이 찾아올 가능성은?” “흥.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을 다 처리할 때 동안 아무도 이 근처에 접근하지 않을 테니까.” 작게 코웃음을 치는 사내의 모습에 만족스레 고개를 주억였다.
녀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만, 바깥에서 스노우가 결계도 치고 있을 테니 별걱정은 없다.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자.

아, 내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명 더 스트레스를 풀어야 될 녀석이 있다.
“옥타비아.” 나지막이 내뱉는 것과 동시에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던 옥타비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항상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녀석이 불쌍하다며 아리파의 부탁으로 오늘은 그녀 대신에 녀석이 함께했다.
인화의 술이 서투른 탓에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있던 우리의 건방진 문어가 이리저리 몸을 풀어댔다.
흉측하던 본신과 달리 제법 사랑스러운 외견이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흉흉하게 눈을 번뜩이면서도 이쪽의 눈치를 살피며 명령을 기다리는 녀석을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마음껏 죽여라.” 덤덤히 내뱉은 허락의 말과 동시에 거대한 문어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달려들던 키메라들 대부분이 삽시간에 곤죽이 되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문어발 너머 잔뜩 당혹스러워하는 사내의 얼굴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그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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